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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대충 부산 여행 - 부산진시장 범일동

by 생기방랑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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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대 혼수 전문시장

부산진시장 주변 풍경입니다. '부산진'이라는 이름은 바로 옆 '부산진성(釜山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부산진시장은 서울 남대문시장,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전국 3대 혼수 전문시장으로 이름을 떨쳤었죠. 부산사람들은 '부산진'에서 '부산'을 빼고 말하죠. 부산진구는 진구, 부산진구 구청은 진구청, 부산진시장도 진시장이라 부릅니다.

 

조선방직의 흔적 - 조방앞

진시장 주변 지역에 일제강점기인 1917 일본 미쓰이그룹이 '조선방직' 이라는 대규모 방직회사를 세웠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조선방직을 '조방'이라 불렀고 조방이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와 부산진구 범일동 일대를 '조방 '이라고 부릅니다. 부산의 음식으로 꼽는 낙지볶음 역시 '조방낙지'라는 상호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방직 주식회사의 사진을 보면 공장 건물이 끝없이 늘어서있습니다. 대규모 방직회사가 있으니 주변으로 사람이 모여들었고 주택가와 상가도 형성되었죠. 경부선 철도까지 가까이 지나며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방직은 1960년대말 해산되었고 부산 다른 지역들의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며 범일동과 조방앞을 추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시장 주변은 과거의 모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죠.

 

범일동 - 시간이 멈춘 흔적들

철길 주변의 집들을 살펴보면 저마다 흥미로운 사연들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붕괴 위험 상태라는 담장 옆의 집은 원래 나지막한 단층 주택이었던 것에 그 위로 집 한 채를 더 얹어 지은 것 같습니다.

2층 지붕의 처마와 창틀 역시 상당히 상당히 오래되어 보입니다. 1980년 초반까지는 고층 아파트에도 나무 창문을 썼으니 저 창문도 80년대 초반 혹은 그 이전의 창문일 것 같네요.

진시장 인근을 지나는 철도는 1900년대 초에 처음 건설되었습니다. 지금은 철도로 넘어가는 위험을 막기 위해 담장이 설치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을 겁니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과 집 사이 골목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곳도 많습니다. 전기 계량기가 2대 혹은 4대씩 붙어있는 걸 보면 여러 가구가 한 건물에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막다른 골목의 이 집은 대문도 상당히 오래된 나무 대문이고,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지 여러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골목을 두리번거리는 이방인이 거슬리는지 이웃집 고양이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느 골목 너머로 3층 건물에 여인숙 간판이 걸려있습니다. 가까이 보니 주변의 주택들에 비하면 상당히 규모가 있는 건물입니다. 직선으로 뻗은 3층 건물에 창문이 많은 걸 보면 처음부터 숙박시설로 사용되던 건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창문과 창틀은 80년대 후반부터 사용된 플라스틱 소재의 창문으로 바꿔달았지만, 방범 창틀은 문양이나 소재로 보면 훨씬 이전의 흔적으로 보이네요.  1층 환기창에도 여인숙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큰 글씨를 예쁘게 쓰기 쉽지 않은데 상당한 명필이 여인숙 글자를 쓴 것 같네요.

 

철길을 따라 사연을 간직한 주택들

철도에 바싹 붙어있는 이 2층 건물은 너무 낡아 기와나 건물 파편이 떨어질 위험이 있는 모양입니다. 낙하물에 주의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당장 뭐가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지붕 기와가 더 이상 비를 막아줄 수 없고 내구성도 떨어졌는지 천막포로 지붕을 모두 감쌌습니다. 남포동이나 영도에 가면 비슷한 모양새로 기와지붕을 천막으로 덮은 옛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나무 창틀과 옛날 문양이 새겨진 유리창, 쇠를 구부려 만든 방범창이 오래된 세월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 2층 건물은 주변 집들에 비해 유난히 툭 튀어 올라온 느낌이고 창문도 커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기찻길 건널목에는 간수라는 철도회사 직원이 상주하며 건널목을 관리했는데, 경부선 철도 곳곳에 간수들의 숙소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2층 창문 너머로 쉽게 철도를 내려다볼 수 있었을 테니, 이 건물이 간수 숙소나 사무실이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봤습니다.

 

세상의 모든 옷, 부산진시장

철길에서 벗어나 부산진시장 주변으로 나옵니다. 진시장에는 혼수, 옷감과 의류, 귀금속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굳이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한복, 비단, 주단, 패션 같은 간판이 사방에 걸려있는 걸 볼 수 있죠.

이 안경원 건물은 특이합니다. 어떻게 건물이 들어섰을까 궁금할 정도인데, 길 한가운데 좁고 긴 형태의 건물이 들어선 느낌입니다. 안경원 뒤쪽으로는 단추구멍 공장이 2층에 자리 잡고 있네요.

반도단추구멍은 아마 옷감에 단추가 들어갈 구멍을 내주는 공장이고, 이 공장에서는 봉제기법의 일종인 인터로크와 오바로크도 가능하다는 것 같습니다. 생소한 다른 직업의 세계를 엿보는 것 같아 흥미롭네요.

부산진시장에는 옷, 옷감, 귀금속 외에 문구류 도매상도 많습니다. 부산의 작은 문구점들은 진시장 도매업체에서 물건을 받아다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매도 가능하고 집 근처 문방구에 없는 인기 아이템들은 이곳에 오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도 있습니다. 물건값이 조금 더 싼 것도 매력적이죠.

유심히 살피면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도로 위를 달리는 전차로 착각할 이 건물도 도로 한가운데 가늘고 길게 들어서있습니다. 예쁜 카페가 영업 중인데 어떤 사연으로 이런 모양새의 건물이 들어섰을지 궁금해집니다. 

진시장 입구에는 유명한 칼국수집, 떡볶이집, 분식집이 많습니다. 진분식의 어닝에 가려졌던 간판을 올려다보니 오래전 의상실이었던 공간이네요. 전화번호 국번도 2자리로 적힌 걸 보니 상당히 오래된 간판입니다. 의상실을 하던 분이 떠나고 분식집을 시작하는 분이 진의상실 이름을 따서 진분식이라 식당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진시장에서 철길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육교를 오릅니다. 이 육교 계단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러 콘크리트에 박힌 자갈들도 많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왼쪽의 콘크리트 난간은 계단과 같은 시기에 만든 것 같습니다. 아치형 구멍들도 옛 분위기를 자아내네요.

육교를 오르면 경부선 철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기차가 대부분 전동화되어 철길을 따라 늘어선 전선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1900년대 초기에도 진시장 주변 철길이 이렇게 넓었을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주택과의 방음벽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예전 집들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주변의 집들은 각양각색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오래된 집들의 모양새와 색깔이 모두 다르니까요. 

붉은 벽돌로 마감한 이 상가 건물은 2층 건물로 높이는 높지 않지만 길이는 상당합니다. 대충 헤아려도 1층에 점포가 15개, 2층에 방도 15개 정도 되어 보입니다. 새로 지은 건물은 아닌 것 같고, 2층의 창호와 타일 외장재만 새로 시공한 듯한데, 건축한 당시에는 꽤 규모가 있는 건물이었을 것 같네요.

 

매축지로 가는 터널

2층짜리 상가건물 앞으로 내려가보면 터널이 하나 나옵니다. 터널의 모양새로는 과거 기차가 다니던 단선 철로의 짧은 터널로 보입니다. 이 주변에도 폐선되기 전 기차 터널로 사용되었던 터널이 2개 더 있으니까요. 자세히 살펴보면 터널에 맞붙은 건물은 터널 안까지 건물이 뻗어 들어가 있습니다.

비가 와도  건물 끝부분은 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 터널 안까지 들어와 있죠. 요즘 같은 때에 공공 영역을 그냥 사용하지는 않았을 테고, 뭔가 터널과 개인 건물 사이에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이 터널을 지나면 매축지가 나옵니다. 부산에 오래 살았던 분들은 '매축지'하면 그곳이 어디이고 어떤 이야기를 간직한 곳인지 다들 아시죠. 영화의 배경으로도 종종 등장해서 타지에 사는 분들도 관심을 갖곤 하는 지역입니다. 

매축지는 매립한 땅이라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에 이 지역을 매립해서 땅으로 만들고 군부대가 자리 잡고 군용 말을 관리했던 곳입니다. 광복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마땅히 머물 곳이 없자 이곳으로 와서 마구간까지도 집으로 삼아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매축지의 흔적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지만 부산의 근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의미 있는 지역입니다. 저 터널을 빠져나가면 매축지 마을이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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