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교통의 중심지 대전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2년에 한 번 정도 대전에 오는 것 같네요. 대전역은 부산역이나 서울역과는 모양새가 많이 다릅니다. 낮고 긴 건물이 기차역이고 그 너머로 철도공단 사옥이 높게 자리하고 있네요.
대전은 한밭이라 불리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교통의 중심지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철도의 중심지라 할 만한 도시라, 곳곳에 기차와 철도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들이 많습니다. 대전 지하철역 3번 입구는 옛날 기차인 비둘기호의 형상을 따서 입구를 만들었네요.
대전의 명물 성심당
대전에 사는 분들은 대전이 관광도시가 아니다, 볼 게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대전을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성심당을 빼놓을 수 없죠. 본점이 있고 신도시인 도룡동에도 지점이 있고, 대전역사 안에도 지점이 있습니다. 기차를 타는 분들이 도중에 대전역에 내려 튀김 소보로와 부추빵을 사갈 만큼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성심당 대전역 지점에는 옛 향수를 불러오는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옆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네요. 보통 길게 줄을 서서 빵을 사는데, 이날 아침과 저녁에는 기다림 없이 빵을 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심당은 첫 시작부터 빵을 싸게 팔았고 남는 빵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증해왔습니다. 빵집이 대기업이 될 만큼 커진 후에는 매일매일 남는 빵이 없게 되었고, 지금은 어려운 이웃을 도울 빵을 따로 일정량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빵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합니다.
대전과 청주의 차이는 성심당
대전, 청주 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청주에 사는 분이 "청주와 대전이 다른 점이 뭔 줄 아느냐, 다 똑같은데 대전에는 성심당이 있고 청주에는 성심당이 없다. 딱 그 차이다."라고 농담을 하십니다. 그만큼 대전이라는 도시에 성심당은 큰 의미를 가진다는 거겠죠.
대전 역전 풍경
글자를 재미있게 조합한 을지대학교병원 광고를 뒤로 하고 역사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래된 목욕탕 굴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부산에는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목욕탕 굴뚝이 아직 많은데 대전 목욕탕 굴뚝은 벽돌로 만들었네요.
MCV 대전아카데미극장
한때 대전 문화의 메카로 꼽혔던 아카데미극장도 보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은 1964년 동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2016년까지 52년간 대전의 영화 문화를 이끌었죠. 하지만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공세에 밀려 문을 닫고 지금은 빈 건물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역 앞을 뜻하는 '역전'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역전 가락국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리는 대전에 기차가 정차하면 후다닥 내려서 가락국수를 얼른 먹고 탈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오래 정차하지도 않아 플랫폼에서 국수 매장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전 역전시장
역사를 빠져나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역전시장이 나옵니다. 대전역은 새로운 모습으로 크게 변했는데, 역전시장은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입니다. 몇 년 전에는 이 골목으로 들어가도 되나 망설였는데,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밝아진 분위기입니다. 충청도 사투리를 간판에 옮겨 적은 가게들도 보입니다. 재미있네요.
좀 더 걸어들어가자 '청소년선도보호구역'이라는 무시무시한 간판이 보입니다. 예전보다 밝고 개방된 분위기라 별다른 일은 없어 보입니다.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는 건 여인숙 간판들입니다. '여인', 그러니까 여행객들의 숙소라는 의미인데, 여관보다 하나 더 낮은 등급의 숙소죠. 요즘은 여관이라는 단어도 모텔이라는 단어로 바뀐 분위기라 여인숙이 뭔지 모르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네요.
이 벽돌 건물은 과거에 의미 있는 쓰임새의 건물이었을 것 같네요. 지금은 휴게실 간판을 달고 있지만 창문 모양새를 보면 성당이나 교회로 사용된 건물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대전 중앙시장
구경하려고 했던 곳은 역전시장이 아닌 중앙시장입니다. 대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은 대전역에서 큰길을 건너가야 나옵니다. 현대식 건축물로 개선이 되어서 분위기는 쾌적하고 아주 좋습니다.
역시 역을 모티브로 한 분위기가 재미있네요. 의류상가 쪽으로는 원단역, 주단역, 한복역, 혼수역, 먹자역 등 상품 종류에 역이름을 달았습니다. 간판도 기차 모양을 따왔네요. 관광객은 재미있는데, 대전에 사는 분들도 이런 걸 보면 재미있어할까 생각도 듭니다.
대전중앙시장은 규모가 상당합니다. 채광이 가능한 아케이드 지붕도 훌륭하네요. 곳곳에 볼거리가 많고 다른 지역의 정서와 문화도 엿볼 수 있어 좋습니다. 통로 한가운데의 노점상에서는 간식거리도 있고 한 끼 식사가 될 만한 음식을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누가 먹고 있다면 따라서 해볼 텐데, 드시는 분이 없어 그냥 지나쳤습니다.
전통 상, 대나무 방석을 파는 가게입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뭔지도 모를 키도 있고, 채도 있습니다. 소품으로 사가는지, 실제로 사용하는 분들이 사가는지 궁금하네요.
수입 물품을 판매하는 양키시장 간판도 있습니다. 뉴욕 양키스도 있기는 하지만, 양키라는 단어는 좋지 않은 느낌도 있는데, 오랫동안 사용해 온 이름이겠죠.
대전 중앙시장 시장 밖 풍경
시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장과 역사를 같이 해온 오래된 건물들이 많습니다. 컴퓨터 자수로 명찰과 마크를 만드는 자수집도 있고, 시장 이름을 딴 다방들도 아직 있네요.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중앙시장을 빠져나오면 화려한 분위기의 오래된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은 다비치 안경원이 입점해 있는데 원래는 옛 산업은행의 대전지점으로 사용된 건물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세운 조선 식산은행 건물로 지어졌고 광복 후 1997년까지 산업은행 대전지점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화강암으로 기단을 쌓고 2층에는 테라 코타로 띠를 두른 화려한 디자인입니다. 만주와 독일에서 수입한 화강석과 테라 코타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등록문화유산은 지정문화유산이 되지 못한 오래된 대학교 건물, 일제 강점기에 건축한 건물들이 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전역 홍등가의 흔적
오래전에는 기차역이 유동인구의 중심지였고 여행객도 많아 숙박시설과 함께 홍등가가 밀집되기도 했습니다. 대전역 건너편에는 아직도 홍등가가 일부 남아 있는 모양새입니다. 여인숙과 이발소 간판에서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