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나라 아이슬란드
소금에 절인 생선 대구를 염대구, 염장대구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Salt Fish 라고 하죠. 과거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염장대구는 아이슬란드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노를 젓는 작은 보트가 대형어선으로 진화해가면서 아이슬란드의 대구 어획량은 급속도로 증가했고 수출 물량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시기 소금에 절인 염장대구 SALTFISH는 아이슬란드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염장대구가 최고의 수출품이 되기 전까지, 아이슬란드는 주로 모직 의류와 말린 대구 STOCK FISH, 대구 간유 를 다른 나라에 내다 팔아왔습니다.
20세기 이후, 대형 동력선이 등장하고 트롤어법이 대중화되며 아이슬란드의 염장대구산업은 거대한 공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한 때 염장대구는 아이슬란드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아이슬란드 경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구 COD를 아이슬란드의 국가적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300년대부터 아이슬란드의 문장 紋章에도 대구가 등장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염장대구 생산의 중심지 그린다비크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카비크에서 차로 1시간 정도를 가면 그린다비크 Grindavik 라는 항구도시가 나옵니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어선들이 잡아오는 대구를 하역하고 가공하는 산업이 잘 발달된 곳입니다.
그린다비크 염장대구 박물관 - Saltfish Museum in Grindavik
그린다비크는 자연온천인 블루라군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염장대구 역사를 소개하는 솔트피시 뮤지엄 즉, 염장대구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래 이미지는 2009년 당시, Saltfish Museum 에 비치되어 있던 박물관 소개 브로슈어입니다. '새롭게 디자인된 박물관 공간에서 아이슬란드의 솔트피쉬산업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문장이 첫 페이지에 있습니다. CD플레이어를 이용해 영어, 아이슬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가이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브로슈어 안쪽에는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대구를 손질하는 오래된 사진이 있습니다. 모든 가공을 수작업으로 할 때인 것 같고 여인들 뒤편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대구가 쌓여있습니다. 기후가 척박한 탓인지, 혹은 대구를 손질하는 일이 고된 탓인지 여인들의 얼굴이 다들 거칠어 보입니다.
솔트피쉬 뮤지엄은 수세기 동안 염장대구 산업이 아이슬랜드의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고 합니다. 진짜 염장대구를 전시해서 방문객들이 솔트피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도 있는데, 방랑객이 방문할 당시에는 박물관에 전시된 염장대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 입장료는 어른 500크로네, 8세~16세의 어린이 청소년은 250크로네였습니다. 솔트피쉬를 재료로 한 음식도 판매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휴게공간도 있습니다.
박물관 외부에 세워진 조형물의 형상은 대구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손질한 다음 펼친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하는 가공 고등어도 이런 모양으로 진공포장되기도 하죠.
박물관은 과거 대구를 생산하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순으로 관람 경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물 크기의 마네팅과 실제 사용했던 어업도구들, 그리고 옛날 사진과 설명을 입체적으로 구성해놓았습니다.
관람경로 바닥을 나무 널빤지로 이어 붙여 만들었습니다. 실제 그린다비크 항구 근처의 대구 가공 작업장을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좋습니다.
손질한 대구를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의 사진으로 예전에 잡던 대구가 얼마나 큰 크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의 대구 문양은 손질한 대구 필레가 왕관을 쓰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 문양은 15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동전과 지도에도 널리 사용되었고 INSIGNIA ISLANDIAE 는 ISLAND OF ICELAND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솔트피시 Saltfish 이기 때문에 대구에서 머리를 잘라내고 뼈를 발라낸 다음, 소금으로 가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그 이주의 역사로부터 소금이 귀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어떻게 소금을 구해 염장대구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네요.
20세기 이전, 동력선이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돛단배나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 대구를 잡았습니다. 배가 육지에서 나갈 수 있는 거리는 3~4킬로미터가 한계였고 사람이 많이 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획량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현대적인 트롤 Trawl 어선이 거대한 그물을 펼쳐 고기를 잡기 전, 소형 그물이나 주낙 Longliner 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어부들이 아이슬란드의 거친 파도와 싸우며 잡아온 대구를 손질하고 가공하여 스페인 등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이 근대 아이슬란드의 경제 기반이 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대구잡이는 아이슬란드인들이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삶의 터전을 개척해온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중요한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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