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많이 듣고 왔어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짝 긴장을 했습니다. 비행기까지는 좋았죠. 보잉의 신제품이자 비행 중에는 날개가 위로 휘어져 올라간다는 B787이었으니까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아마 버스를 타고 비행기에서 공항 건물까지 이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이런 낮은 앵글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겠죠.
◈ 낯선 땅, 내리자마자 걱정이 태산
공항청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대부분 건물이 그렇지만..) 어두컴컴합니다. 조명을 다 안 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대신 사람이 일을 하고 프린터로 나올 영수증이나 확인증을 먹지에 대고 사람이 써서 줍니다. 모든 게 천천히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나즈막한 건물이 볼레국제공항입니다. 2018년, 공항 주변 분위기가 대충 이렇습니다.
일반인들은 공항 내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는데, 주차장 쪽에서 마중을 나온 사람들의 분위기도 대략 이렇습니다. 여행자에게 편안함을 주는 분위기는 아니니 처음 와보는 사람이라면 주변 풍경에 아무래도 위축이 될 수밖에 없겠죠.
여기에... '아는 게 병'이라고 에티오피아에 오기 전 너무 많은 공부를 했던 게 탈이었습니다.
공항에 내리면 말 한마디만 물어봐도 대답해주는 대가로 10달러를 달라고 하는 놈들이 있다.. 절대로 직접 껍질을 까지 않은 과일은 먹으면 안 된다.. 길에 다니는 놈들은 다 소매치기 기능 보유자다.. 유리잔에 먼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먹어라.. 처음 가면 3-4일은 설사병으로 반드시 고생한다.. 자동차 시트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나 벼룩이 살 수도 있다.. 등등
그래서 처음에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아니, 첫 여행 전체를 긴장한 상태로 보냈죠.
◈ 시간이 흘러가니 걱정도 흘러가고
하모니호텔입니다. 우리나라 외교관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이 아디스 아바바를 방문하면 주로 이 호텔에 머문다고 할 만큼 괜찮은 상급호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너무 많이 한 탓에,,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저 파파야 쥬스 한잔을 마시는데 1주일이 걸렸습니다. 더러운 손으로 깎은 과일을 갈아 만들었을 수 있고, 저 주스에 탄 물이나 유리잔을 씻은 물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설사병이 도지면 일하는데 방해가 되니, 배탈이 나도 괜찮은 주말에 마시자.. 는 생각에 토요일 아침 식사부터 쥬스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유리잔이나 식기류가 더러울 수 있다는 걱정도 했지만 운명에 맡기기로 했죠. 물론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첫 여행에서 머물렀던 하모니호텔은 힐튼 같은 비싼 호텔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호텔 중에는 그래도 알아주는 호텔에 속합니다. 당연히 위생적으로도 괜찮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아는 게 병이라고 걱정은 호텔 방에서도 계속되었죠. 처음 1주일 동안은 호텔에서 나오는 수돗물로 양치를 하지도 않았고 생수를 사다 양치를 했습니다. 라면 포트도 수돗물로 씻은 다음 생수로 헹궈 사용을 했죠. 물론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너무 많이 알아서 너무 많이 걱정을 하고 생활이 불편했던 거죠. 또 하나 걱정은 점심식사를 외부 식당에서 할 때였습니다. 한국식당이야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하지만 중국식당이나 현지음식 식당을 가게 되면 얘들이 포크, 나이프는 제대로 씻었을까, 이 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셔도 되나.. 걱정이 많았죠.
그렇게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며 1주일을 지내면서 아무런 탈이 나지 않자, 조금씩 안심을 하고 수돗물도 쓰고 호텔 조식에 나오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게 되었습니다.
◈ 어지간해서는 탈이 나지 않아요
세번째 갔을 때부터는 길거리에서 에티오피아식 커피인 분나 BUNNA를 파는 노점상에 앉아서 대충 물로 헹군 잔에 따라주는 커피도 잘 받아마시게 되었습니다. 시장 과일가게에서 파는 과일주스도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시간 날 때마다 찾아 먹게 되었죠.
상수도 보급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물통에 물을 길어와서 그 물로 커피를 끓이고 흐르는 수돗물에 잔을 씻는 게 아니라 대야에 받아놓은 물에 잔을 헹구기만 합니다.그런데도 설사나 배탈없이 생활할 수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여행 그리고 넷 다섯 여섯 번째 여행에 계속 이용하는 여관급 호텔에서 내려다본 가게 뒤편입니다. 저 가게는 분나 커피와 빵 같은 걸 파는 작은 식당인데 아침에 일을 나가기 전 운전기사와 커피를 종종 마시던 곳이죠.
그릇 씻는 장면은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대충 이렇습니다. 손님이 먹고 난 그릇을 회색 대야에 넣고 설거지를 합니다. 저 대야에는 물과 세제가 들어있죠. 그러고 나서 분홍색 대야에 담긴 맑은 물에 한번 더 헹구면 끝.
아마도 저 가게는 수도가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수돗물이거나 지하수이거나 어디선가 받아온 물로 커피도 끓이고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는 거죠. 그렇게 만들어준 커피를 그렇게 씻은 잔에 마셔도 탈이 나지 않습니다.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 나라에 오면 한번은 꼭 배탈을 앓게 된다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국내에 있어도 어느 나라를 가도 뭔가 잘못 들어가면 탈이 날 수 있는 거니까요. 물론 손을 깨끗하게 씻고 조심하는 개인위생은 기본적을 지켜야겠지만요.
여기저기 읽은 글들만 기억하고 노심초사 긴장하고 있으면 오히려 더 탈이 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지나친 도전도 금물이죠. 지인 한 분이 장기체류 하면서 에티오피아 사람들 먹는 육회를 먹었다가 설사병이 도져서 일주일 고생을 했다 합니다.
◈ 핸드폰 도둑이 많은 건 사실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핸드폰 도둑이 많다보니 어설프게 주머니에 꽂고 다니다가는 잃어버리기 딱 좋죠. 하지만 어지간한 도둑들은 아날로그 방식이라 칼이나 연장을 쓰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가져가는 정도라 합니다. 주머니에 넣고 지퍼만 잠가도 가져가기 힘든 거죠.
저는 보름에서 20일짜리 여행을 6번 했는데 한 번도 뭘 잃어버린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인 한분은 슈퍼마켓에서 누가 툭 치길래 길을 비켜줬는데 나중에 보니 핸드폰이 사라졌다고 하네요. 핸드폰 도둑들은 외국인 현지인 가리지 않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제일 좋은 예방법은 핸드폰과 지갑을 안주머니 같은 깊숙한 곳에 넣고 길을 오갈 때 가능한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면 됩니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 가까이 접촉하지 않고 주머니 속 물건을 빼갈 수는 없으니까요.
◈ 그래도 안전한 나라, 에티오피아 - 비교적 상대적
못 사는 나라도 사람 사는 곳이고,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러 달려와주는 곳이죠. 여행정보를 읽다 보면 안 좋은 이야기, 안전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만 머릿속에 남기 때문에 여행지가 무서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아는 게 병이 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여행이 되고 맙니다.
우범지대를 가거나 밤에 돌아다니면 어느 나라는 위험할 수밖에 없지요. 그 외에는 개인 위생 신경 쓰고, 중요한 물건들 안 보이게 잘 간수하고 다니면 적어도 에티오피아는 안전한 나라입니다.
이웃나라 케냐는 밤에 돌아다니다 걸리면 팬티만 남기고 다 벗겨간다는 이야기도 있죠.
거기에 비하면 에티오피아는 매우 안전한 나라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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