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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방랑 여행기/프랑스 라로셸 - 대서양을 품은 항구도시

대서양을 품은 항구도시 라 로셸 (2008) #1

by 생기방랑 202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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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08년과 2012년 프랑스 서쪽 해안의 항구도시 라 로셸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지금의 여행 환경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라 로셸의 기차역 (2008)

라 로셸에 도착했습니다. 고풍스러운 기차역을 뒤로하고 걸어가다 보며 파리에서 보았던 그런 오래된 건물들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옛 4대문 안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처럼 라 로셸도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옛 번화가가 있는 걸로 보아, 아마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가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서양 Biscay 비스케이만에 위치한 라 로셸은 사량트 마리팀 주의 주도이자 어업 항구, 무역항, 그리고 요트항으로의 3가지 역할을 모두 한다고 합니다. 

 

2008년 처음 갔던 호텔은 Hôtel Le Rochelois 였습니다. 같이 갔던 일행들이 모두 다른 호텔에 묵었는데 모두 초행길이었고 호텔들도 다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는 바닷가에 있는 호텔을 골랐었죠.

 

당시에는 행시기간이라 행사 참가패스를 보여주면 시내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다고 해서 먼 곳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대신에 관광객으로는 볼 수 없는 라 로셸의 구석구석을 엿볼 수도 있었죠.

 

라 로셸 항구를 오가는 시내버스 (2012)

호텔에 막 도착한 건 오후 7시~8시 정도였을 것 같습니다. 호텔 정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도 반응이 없었죠. 한참을 서 있는데 투숙객 중 한명이 베란다로 나와서는 정문의 우편함을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우편함 안에는 정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었고 이 열쇠로 정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 호텔 현관까지 갔습니다. 호텔 현관은 비밀번호를 누르는 열쇠로 잠겨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약을 했던 메일에 문을 여는 비밀번호 같은 게 있었던 게 기억이 났습니다.

이메일을 프린트했던 종이를 꺼내 적혀있는 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습니다. 현관 안쪽 로비에는 직원들이 퇴근하고 아무도 없었고 투숙객에게 배정된 열쇠들이 각각 이름이 적힌 봉투에 놓여있었습니다.

 

이 날 이후로 직원이 24시간 머물지 않는 호텔에 출입하는 방법을 터특하게 되었죠. 어떤 작은 호텔들은 체크인을 할 때 열쇠를 2개 주는데 하나는 방 열쇠이고 나머지 하나는 호텔 입구 열쇠입니다. 직원이 없는 시간에도 호텔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인 거죠.  

 

사진조차 남길 수 없었던 이 날은 사연이 참 많았습니다. 물 한잔 못 마시고 TGV를 타고 라 로셸에 내린 후 한 시간 가까이 트렁크를 끌고 모르는 길을 걸어 호텔까지 왔는데... 방 안에는 물 한 병이 없었죠. 

 

로비에는 자판기가 있었지만 동전이 없는 상태, 직원도 없어서 자판기 음료수도 꺼내 먹지 못한 처지라 어두워진 거리로 나왔습니다. 길 가는 할아버지에게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는지 물으니.. 있기는 한데 이 시간이면 다 문을 닫았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아.. 말로만 듣던 해지면 다 집으로 간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을 하며 무작정 촉이 끌리는 데로 걸어갔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걸어가니.. 딱 혼자 문을 열고 있는 피자집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야식으로 피자를 배달하는 가게인 것 같은데 매우 매우 반가웠지요.

 

작은 피자 하나와 콜라 두 캔을 사서 다시 20여분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12년 전 걸었던 길을 구글맵으로 더듬어보니 호텔도 피자가게도 그대로 있는 것 같습니다. 800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에 걸어서 22분이라고 나오지만, 처음 방문한 도시의 어두운 길을 어딘지도 모르고 걸을 때는 정말 길게 느껴졌던 것 같네요.

 

이 생쑈를 한 이후로, 해외여행을 나갈 때는 작은 물 한병을 트렁크에 넣어 갑니다. 혹시나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또 생길 수 있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호텔 로비에 물어보니 1시간에 1대 정도 오는 버스를 맞춰 타기는 어려워 무작정 방향만 대충 맞춰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해변에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밭이 형성되어 있는 게 조금 신기했는데 물이 맑지도 않고 흙탕물이라 그냥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중해 리비에라 해안가의 깐느에 여러 차례 다니며 느꼈던 바다의 느낌, 햇살, 바람에 비하면 라 로셸에서 맞는 대서양의 바람과 파도는 무척 거칠고 강하다는 느낌으로 비교됩니다.

  

말도 안 통하고 처음 간 도시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괜찮아 보이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포스팅을 정리하면 하나씩 인터넷을 뒤져 어디가 어디인지를 기록해봅니다.

 

무조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요트 계류장과 전시장이 나온다는 생각만으로 주택가든 공원이든 무작정 걸어갔었습니다. 아마 이 집은 창문에 덧댄 가림막이 예뻐서 사진에 담은 것 같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를 대비해서 보호창을 만든 것 같은데, 호텔 베란다 창문 전체가 전동식 알루미늄 새시로 내려 닫을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인 듯합니다.

 

이 공원은 프랭크 델마스 공원 PARC FRANCK DELMA이네요. 사진과 비슷한 해안가의 녹지를 구글맵 위성사진에서 찾아보니 공원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돈 많은) 선주 가문인 델마 가문의 정원으로 라 로셸에서는 거의 유일한 영국풍의 정원이라고 하네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있다고는 나와있지만 라 로셸 관광 홈페이지에도 그리 자세히 나와있지 않을 걸 보니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의미 깊은 장소는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저 어르신이 오래전, 유명한 선주 델마 님이신 모양입니다. 저 동상을 시작으로 해서 끝없는 잔디밭이 펼쳐져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동상이 작게 보이고, 더 작게 보이고, 더더 작게 보일 때까지 잔디밭이 이어져있죠.

 

구글맵에서 거리를 측정해보니 500미터에 이르는 거리만큼 녹지가 조성되어 있네요. 과거 선주 가문의 재력으로 이 공원을 만들었다면 이 지역에서는 대단한 재력가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드 포트 지역까지 걸어 나오니.. 19세기 즈음에 지어졌을 거라 상상이 되는 오래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오래된 건물들이 별 다른 문제 없이 집으로 쓰이고 음식점, 가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게 참 부럽습니다. 

 

낮 시간이 되고, 주민들과 관광객이 뒤섞이며 항구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백파이프를 든 거리의 악사가 공연을 시작합니다. 2008년 당시에 사용하던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서인지.. 영상이 크게 찍히지는 않았네요.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연주도 잘하고 농담도 잘해주었습니다. 잠시 예술 애호가로 인격을 전환하고, 연주하며 팔고 있는 CD를 한 장 사주었고 CD 표지에 싸인을 부탁하기도 했죠. 

2012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이분을 만날 수 없었는데, 지금도 잘 살고 계시길 바랍니다.

 

라 로셸도 깐느나 니스 같은 프랑스 해안도시처럼 요트의 천국인 것 같네요. 요트 계류장에 각양각색의 요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바람도 강하고 햇볕도 강하니 거친 파도를 가르며 요트를 타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장소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요트에 손님들을 불러 모아 작은 칵테일파티를 여는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큰 행사가 열리면 비싼 전시장 대신 요트에 손님들을 초청해 전시장을 대신하거나, 귀빈들을 요트에 태우고 세일링을 하는 모습은 프랑스 해안도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뱃멀미가 있는 손님들에게는... 별로일 것 같긴 하지만요.

 

라 로셸 항구에는 2종류의 유람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항구 근처만 살짝 오가는 배이고, 또 하나는 바다 위의 요새인 포트 보야르 (Port Boyard)로 가는 더 큰 배가 있습니다. 

 

2008년에 갔을 때는 근처만 살짝 돌아보는 배만 탔고 포트 보야르는 2012년에 가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배는 항구 근처만 오가는 배입니다. 유람선이라기보다는 빙 둘러가야 하는 항구 길을 바다 위로 가로질러 가주는 셔틀 같은 배로 기억되네요. 그래도 이 배를 타면 바다 위에서 라 로셀 올드 포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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