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를 탈출한 듯, 공항을 나와 거리로
아디스아바바 볼레국제공항을 빠져나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입국 수속과 비자 발급을 지나, 수하물로 맡겼던 여행가방을 찾고, 세관 짐 검사를 통과한 다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주차장의 현지 사람들을 지나쳐 마중을 나와있던 현지인 운전기사를 만나기까지 긴장되는 미로의 연속입니다. 어느 나라든 공항과 거리의 낯선 느낌에 익숙해지기까지 신경이 바짝 쓰이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에티오피아는 완전히 새로운 외계에 온 것 같았습니다.
공항 도로를 뱅글뱅글 돌아 시내로 향합니다. 에티오피아는 과거 공산주의 정권이 장기간 집권을 해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적 성향이 다소 느껴집니다. 여기에 군대와 경찰의 영향력도 크죠. 보안 또한 삼엄하기 때문에 공항 곳곳에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말이 경찰이지 훤칠한 체격과 전투복 같은 제복을 입고 있어 그냥 군인들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에티오피아는 경찰, 군인, 관공서 등의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경찰, 군인, 관공서를 향해서는 핸드폰 카메라도 향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자긍심, 에티오피아항공
에티오피아는 문화적 자긍심이 아주 큰 나라입니다. 공용어인 암하릭어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오랜 역사 중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것 등 자부심을 가질만한 큼직큼직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에티오피아항공 또한 에티오피아 자부심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해인 1945년에 에티오피아에는 항공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허브항공사 역할을 하고 있죠. 이들의 자부심은 공항 입구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 프로펠러 비행기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첫 비행기였다는 이 쌍발기는 에티오피아와 이집트를 오가는 노선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공항 입구, 에티오피아항공이 운영하는 에티오피안 스카이라이트호텔입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칼호텔 정도 되겠네요. 2019년~20년 즈음에 완공을 하고 코로나 시국에는 해외입국객들을 강제 수용하는데 이용되기도 했죠. 물론 비용은 여행객 자부담이었습니다. 제법 비싼 호텔로 하룻밤 숙박비가 30만원을 넘나듭니다. 에티오피아 렌터카 운전기사의 한 달 월급이 15만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호텔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거리 둘러보기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로 들어섭니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아디스아바바는 1년 내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합니다. 아프리카는 더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상당히 다른 환경이죠. 낮에는 햇살이 약간 따가울 정도이지만 그늘 밑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밤에는 온도가 10도 가까이 내려가 제법 쌀쌀합니다. 사람들은 대략 우리나라 가을 분위기의 옷을 입습니다.
숙소까지 가는 거리 풍경은 상당히 혼란을 느끼게 합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은 상당히 오래된 차들이 많습니다. 드문드문 신형 차종도 보이지만 택시나 승합차 등은 꽤 오래된 차들이 많고, 간혹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수십년된 차들도 지나다닙니다. 2층 버스가 다니는 것도 가끔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풍경입니다. 오래된 차들은 꽁무니 머플러에서 엄청난 양의 매연을 뿜어내기도 합니다.
번화가에는 제법 높고 번쩍이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에 이런 멋진 고층빌딩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특히 아디스아바바의 금융가를 지나다 보면 상하이 마천루를 방불케하는 멋진 건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짓고 있는 건물들도 많은데 상당수 건물들이 중국 자본을 더해 건설되고 있습니다. 많은 강대국들이 극빈국에 돈을 빌려주거나 원조를 하는데 중국 역시 투자의 개념으로 에티오피아의 건축산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건축 중인 건물 외벽 가림막에 조니워크 위스키가 광고를 걸었습니다. Keep Walking Ethiopia 라는 문구가 조니워커 Striding man 그림과 함께 걸려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발전을 격려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꽤나 멋진 광고 카피로 보입니다.
아래 사진 속 별이 있는 탑은 1970년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던 소말리아와의 전쟁 기념비 Tiglachin Monument 입니다. 에티오피아 동쪽 오가덴 지역을 침공했던 소말리아를 물리쳤던 전공을 기념하는 승전기념비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합니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육상경기에 우수한 선수들이 많지만, 보통 사람들은 축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TV는 없는 집도 많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문화는 아직 크게 보편화되지 않아 차 안에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축구 중계를 집중해서 듣기도 하죠. 멀리 펩시콜라 광고가 걸린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광고모델은 메시입니다. 메시와 펩시가 발음이 비슷한 게 흥미롭네요.
아디스아바바의 경전철과 미터기 택시, 그리고 중고차
아디스 아바바에는 경전철이 있습니다. 1호선과 2호선이 있는데 대락 도시 전체를 T자 형태로 커버하고 있죠. 2016년 중국 자본으로 건설되었는데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모든 역은 지상에 있고 역마가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죠. 타볼까 생각해 봤는데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분들이 반대하거나 힘들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이 외국인이 끼어들어 타 볼만큼 만만치 않다는 거죠. 특히 출퇴근시간에는 우리나라 지옥철을 방불케 할만큼 사람이 많기 때문에 타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에 소매치기 같은 범죄도 많기 때문에 굳이 탈 필요가 없다는 거죠.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업무상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경우, 기사가 딸린 렌터카나 회사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더 편리하기 때문에 경전철은 구경만 하고 타볼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경전철만큼 주민들의 생활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미터기 택시도 아디스 아바바의 새로운 문물이 되었습니다. 원래 에티오피아의 택시는 미터기가 없는 흥정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계약을 한다는 의미로 Contract에서 비롯된 콘트라 택시라 부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더 좋은 차량에 미터기로 요금을 정하는 현대식 택시가 등장을 한 거죠. 사진 속의 노란색 차량이 미터기 택시입니다. 2018년 당시의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미터기 택시가 더 비싸고 불편하다는 여론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쉽게도 미터기 택시는 이후 등장한 라이드 RIDE 같은 차량 공유 앱이 등장하며 콘트라 택시에도 밀리는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죠. 물론 콘타라 택시 역시 요금도 명확하고 기사의 신분도 확실한 차량 공유 앱에 많이 밀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자동차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신 차량은 많이 없지만 근대 역사를 스쳐지나간 차량들을 포함해 다양한 차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대부분이 오래된 차량이고 국제 중고차 거래를 통해 에티오피아로 들어옵니다. 도요타의 스테디셀러인 코로라 같은 승용차는 여러 세대의 차들을 모두 볼 수 있고 우리나라 중고차도 제법 많이 보입니다. 사진 속 도요타 소형차인 앞으로 우리나라 다마스가 보입니다. 참소주라는 대구경북 지역의 소주회사에서 사용하던 차가 글자도 떼지 않고 에티오피아로 넘어와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디스아바바를 벗어나면 스텔라, 티고 같은 차량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점유율이 가장 높은 브랜드는 역시 토요타입니다. 특히 승합차는 현대 스타렉스가 간혹 보이는 것 외에는 대부분이 여러 세대에 걸친 도요타 하이에이스입니다. 이 역시 일본에서 넘어온 차량, 중국에서 넘어온 차량이 있고 아랍에서 사용하다 넘어온 차들 등 다양합니다. 조수석 사이드미러 거울 밑에 '사물에 거울에 비치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안내문이 여러 언어로 적혀있는 걸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번화가로 꼽히는 에드나몰입니다. 에드나몰은 우리의 CGV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비슷합니다. 택시를 타거나 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할 때 에드나몰로 가자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죠. 하지만 그 명성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영화관 외에는 별달리 관심이 가는 매장은 없습니다. 밤이 되면 매춘 호객꾼도 있고 술이나 약에 취해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들, 구걸하는 거지들, 그리고 관광객의 휴대폰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리기도 합니다.
오후 늦게 번화가를 벗어나 외부로 나가기 시작하면 흙먼지가 말라붙은 도로, 아디스 아바바 근교 도시로 퇴근하는 사람들과 자동차로 혼잡이 극에 달합니다. 근교로 나가는 도로는 교통체증을 앓고 반대로 도심으로 들어오는 도로는 한산한데, 출근시간에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가변차로 대신 역주행 차로를 하나둘 열어 소통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고, 부족한 것은 많은,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역사와 문자를 가진 에티오피아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인류의 고향이라 그런지, 조금만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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